메이저 바카라(刻手)는 판목에 글자를 새기는 사람이다.각자장(刻字匠), 각공(刻工), 각원(刻員)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문헌에 나타난 메이저 바카라의 명칭 역시 다양한데, 메이저 바카라, 각자(刻字), 각(刻), 간자(刊字), 각원(刻員), 각공, 도(刀), 간각(刊刻), 원각(願刻), 양공(良工) 등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를 담당한 계층은 주로 승려와 벼슬 없는 일반인이었다.
이러한 메이저 바카라들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각종 서적 간행에 참여하였으며,간경도감(刊經都監)의 여러 서적을 출판하는 데 있어서도 당대의 유명한 메이저 바카라들이 참여하였다. 예를 들어, 세조 때 간행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변란 우측 하단에 나타난 이영산(李永山), 장막동(張莫同), 고말종(高末終), 박군실(朴君實), 박충연(朴忠連), 최득산(崔得山), 유돈일(柳頓一), 홍개미치(洪介未致), 우인수(禹仁守), 최금동(崔今同) 등은 모두 당대의 최고 가는 메이저 바카라들로, 이들의 뛰어난 판각술은 당시에 간행된 여러 서적을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영영사례(嶺營事例)』 「간역식례(刊役式例)」에 의하면, 서적 간행에 필요한 물품은 각 읍에 분정하였으며, 메이저 바카라, 목공(木工),소목장(小木匠), 야장(冶匠)을 두어 이들에게 규정된 요미(料米)를 지급하고, 또한 작업 성과에 따라 별도의 공전(工錢)을 지급하였다고 한다. 또한 각종 사료(史料)에 의하면, 메이저 바카라는 관아에 전적으로 매이지 않고 농사 등 본래의 생업에 종사하다가감영(監營)에 일거리가 생겼을 때 도메이저 바카라(都刻手)를 따라 응분의 보수를 받고 일을 하고, 그 일이 끝나면 평소 생업으로 돌아오는 형태를 취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 초기에는 또한 관아의 공장(工匠)들에게 소정의 직위를 수여하여 일반 장인들을 감독하게 하는 한편 그들의 생계를 보장토록 하였다. 이들 역시 원래 관아에 소속된 메이저 바카라들이었으나 관판을 비롯해 간경도감 및 왕실판 불서를 판각한 공으로잡직(雜織)을 넘겨 받게 되었다. 각자장의 판각 활동이란 본래 관판이나 왕실판의 개판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으나, 간혹 왕실의 발원으로 지방의 사찰에서 개판불사(開板佛事)가 행해질 경우 부득이 여러 명의 숙련된 각자공이 동원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