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자(字)는 대방(大方)이다. 전라도 장성현(長城縣) 사람으로, 아버지는 흥위위(興威衛)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서희팔(徐希八)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이순목(李純牧)의 딸이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하지 않았다.
『이천서씨절효공파대동보(利川徐氏節孝公派大同譜)』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대과(大科)에 급제하고 시중(侍中) 벼슬을 하였다고는 하나 그의 정치적 활동이나 다른 행적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이규보(李奎報)와 함께 교유한 사실이에 전한다.
1246년(고종 33) 12월 겨울에 어머니의 목에 악성 종기가 나서 의원을 불러와 진료하게 하였다. 의원이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하지 못하면 낫기 어렵다고 하였다. 당시 추위가 한창이었으므로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며, 어머니의 병은 고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목 놓아 울었다. 다른 약이라도 만들자며 나무 아래에서 약을 만드는데 살아 있는 개구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약 만드는 그릇으로 들어갔다. 약을 만들어 어머니의 종기에 바르니 종기가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설화(孝行說話)를 탄생시킨 서릉은 온라인 카지노 사이트 무신집권기의 대표적 효자였다.
1232년(고종 19)에서 1233년(고종 20) 무렵, 조모상을 당하여 지은 「거가십훈(居家十訓)」이 있다. 서릉이 시묘살이할 때 배우러 온 어린 자제들이 예제(禮制)를 알지 못하므로 만들어 가르쳤던 것이다. 모두 10조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참고하여 완성하였다. 「거가십훈」을 최초로 수록한 간본은 1578년(선조 11) 또는 직후에 간행된 「온라인 카지노 사이트시중절효선생서공거가십훈(高麗侍中節孝先生徐公居家十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