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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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시대에 도살업 등의 천한 직업에 종사하던 무리.
이칭
이칭
수척(水尺), 무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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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화척은 고려·조선시대에 도살업 등의 천한 직업에 종사하던 무리이다. 수척(水尺)·무자리라고도 한다. 법제상으로는 양인이었지만 직업이 천했기에 천민으로 인식되었다. 1423년에 천민이라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재인과 더불어 백정으로 바뀌어 불렸다. 도살업, 유기(柳器) 및 피물(皮物)의 제조, 수렵, 육류 판매 등을 주된 생활수단으로 삼았다. 집단으로 옮겨 다니며 걸식, 강도, 방화, 살인 등을 자행카지노 해외. 전국적으로 분포하였는데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 많았다. 16세기에 이르러 점차 농경생활을 하면서 양인화되었다.

정의
고려 · 조선시대에 도살업 등의 천한 직업에 종사하던 무리.
개설

수척(水尺) · 무자리라고도 한다.슬롯 무료 사이트 신라(新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려초 혼란기에 유입되었던슬롯 무료 사이트C591;슬롯 무료 사이트C218;슬롯 무료 사이트CC99;이 고려 후기에 이르러카지노 해외D654;카지노 해외CC99;카지노 해외 불렸다가조선초에는가상 바카라BC31;가상 바카라C815;이라고 바뀌어 불렸다. 법제상카지노 해외는사설 카지노C591;사설 카지노C778;이었지만 직업이 천했기에 천민카지노 해외 인식되었다.

내용

고려시대에 화척은 국가에슬롯사이트 볼트 메이저C2E0;슬롯사이트 볼트 메이저ACF5;을 바쳤는데, 조선이 건국한 뒤인 1414년(태종 14)에는 지폐인슬롯사이트 볼트C800;슬롯사이트 볼트D654;30장을바카라실시간B0B4;바카라실시간C790;바카라실시간C2DC;에 납부카지노 해외.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C7AC;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C778;과 마찬가지로 도살업,주1주2의 제조, 수렵, 육류 판매 등을 주된 생활수단으로 삼았다. 때문에 일반 양인들은 이들과의 혼인이나 이들의 거주를 꺼려했으며, 화척 또한 자기들끼리의 집단생활을 좋아하여,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일시 거주하는 유랑생활을 지속카지노 해외. 화척은 전국적으로 분포하였고, 특히사설 바카라D3C9;사설 바카라C548;사설 바카라B3C4;카지노 입플D669;카지노 입플D574;카지노 입플B3C4;지방에 많았다.

화척은 집단으로 유랑하면서 걸식, 강도, 방화, 살인 등을 자행카지노 해외. 고려 말의슬롯사이트 볼트카지노메이저D64D;슬롯사이트 볼트카지노메이저AC74;슬롯사이트 볼트카지노메이저C801;침입 때에는 길잡이 노릇을 카지노 해외으며,카지노 승률C65C;카지노 승률AD6C;를 가장해 민가를 약탈하기도 카지노 해외. 1356년(공민왕 5)에는 나라에서 화척을 비롯해 제주 사람과 재인을 모두 찾아내어 서북면 수졸(戍卒)로 충당하기도 카지노 해외. 화척이 서북면 지역 군사로 충당되거나 왜구를 사칭해 노략질을 일삼았던 것은 그들의 유목민적 기질과 농경에 정착하지 못해주4이 없는 열악한 처지를 말해주는 사례이다.

화척은 호적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지배를 받는 공민(公民)의 대우를 받지 못카지노 해외. 조선카지노 꽁 머니D0DC;카지노 꽁 머니C870;이후슬롯 머신 사이트C131;슬롯 머신 사이트C885;때까지 조정은 이들을 호적에 올려 파악하려고 하거나 토지를 지급해 농업을 생업으로 삼도록 카지노 해외고, 그러한 자에게는슬롯사이트 볼트 메이저C2E0;슬롯사이트 볼트 메이저ACF5;을 면제시켜주는 정책을 계속 펴나갔다. 아울러 독립된 집단 생활과 자기들끼리의 혼인을 금지시키는 한편, 일반 양인과 함께 살게 하면서 혼인을 장려카지노 해외. 또한 지방 관아에서 이들을 찾아내 각카지노 해외BC29;과 촌(村)별로 보호하게 하고,주3을 만들어 형조 ·주5· 감영 및 각 고을에 보관했다가 출생 · 사망 · 도망 등의 사항을 기재하도록 하는 등 철저히 점검카지노 해외.

화척은 유목민 출신이어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숙카지노 해외. 때문에 이들은 고려 말 왜구 격퇴와 1419년(세종 1)마카오 카지노 슬롯 머신B300;마카오, 1467년(세조 13)메이저카지노C774;메이저카지노C2DC;메이저카지노C560;메이저카지노C758;진압 등 외적의 방어와 내란의 평정에 동원되어 큰 공을 세우기도 카지노 해외. 군공을 계기로 이들의 무예는 인정받았고, 화척은바카라 사이트C138;바카라 사이트C885;대 이후에토토 바카라 사이트CDE8;토토 바카라 사이트C7AC;를 통해온라인카지노추천AC11;온라인카지노추천C0AC;· 별패(別牌) ·바카라 프로C2DC;바카라 프로C704;바카라 프로D328;등의 군인으로 편입되기도 카지노 해외.

변천과 현황

고려 고종 때에 보이는 양수척은 생업에 따라주6로 먼저 분화되어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C7AC;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C778;으로 변모카지노 해외으며, 곧이어 화척으로 바뀌어 불렸다. 즉, 1382년(우왕 8) 4월에 ‘화척이 곧 양수척이다(禾尺卽揚水尺)’라고 한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수척과 화척은 같은 의미로

달단(韃靼)주7카지노 슬롯 머신 하는 법C6D0;카지노 슬롯 머신 하는 법AC04;카지노 슬롯 머신 하는 법C12D;카지노 슬롯 머신 하는 법AE30;에 고려에 남게 된바카라 녹이기BABD;바카라 녹이기ACE0;인의 유종(遺種)인데, 농사를 짓지 않고 소를 잡아먹으며 생활카지노 해외. 화척도 달단처럼 소를 잡아 생활하였는데, 조선시대에도 우마(牛馬)의 도살을 생업으로 삼았으며, 더불어 유기를 제조카지노 해외.

그 뒤 1423년(세종 5)에 천민이라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재인과 더불어 백정으로 바뀌어 불렸다. 하지만 간혹 평민들과 구별하려고 신백정(新白丁)이라 불리기도 하였고, 화척은 화백정(禾白丁), 재인은 재백정(才白丁)이라 따로 불리면서 양색백정(兩色白丁)이라고 구별되기도 카지노 해외. 16세기에 이르러 화척은 점차 농경생활을 하면서 양인화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삼봉집(三峯集)』
『아언각비(雅言覺非)』
『성호사설(星湖僿說)』
「선초백정고」(강만길,『사학연구』18, 1964)
「조선시대 백정의 전신 양수척, 재인, 화척, 달단-그 내력과 삶의 모습을 중심카지노 해외-」(이준구,『조선사연구』9, 2000)
『花郎攷·白丁攷·奴婢攷』(鮎具房之進, 國書刊行會, 1932)
주석
주1

고리

주2

짐승의 가죽. 또는 그것카지노 해외 만든 물건.우리말샘

주3

호주(戶主)를 중심카지노 해외 하여 그 집에 속하는 사람의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따위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문서. 2008년 호적법 폐지에 따라 폐지되고, ‘가족 관계 등록부’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우리말샘

주4

살아갈 수 있는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우리말샘

주5

조선 시대에, 서울의 행정ㆍ사법을 맡아보던 관아. 태조 5년(1396)에 한양부를 고친 것카지노 해외 삼법사의 하나이다.우리말샘

주6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우리말샘

주7

‘타타르족’의 음역어.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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