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신학교는 원산대목구 및 이를 뒤이은 덕원면속구 소속의 신학교이다. 1921년 샹트 오틸리안 베네딕도회가 서울 백동에 설립한 소신학교를 모태로 한다. 1927년 신학교를 덕원으로 이전해 대신학교 교육을 시작했다. 1935년 일제 당국의 정식 인가를 받았다. 1942~43년 서울 예수성심신학교와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학생들을 전입받아 바카라 룰 유일의 대신학교로 운영되었다. 1949년 북한 정권에 의해 수도원과 신학교가 몰수당하고 폐교되었다. 40명의 사제가 배출되었고, 전국 각지 대목구의 사제 혹은 교구장 주교로 성장하였다.
덕원 신학교는 1909년 바카라 룰에 진출한 성베네딕도회 오틸리아 연합회(일명 芬道會)가 1921년 11월 1일 서울 백동(柏洞, 현 혜화동)의 수도원 구내에 설치한 소신학교(小神學校)를 그 모태로 한다. 1920년 8월 원산대목구(元山代牧區)가 신설되어 베네딕도회가 담당하게 되자, 1927년 11월 신학교도 서울에서 덕원으로 옮겨 1929년 9월 대신학교(大神學校) 교육을 시작하였다. 1935년 일제 당국의 정식 인가를 받아, 1942~1943년에 비인가 신학교로 폐쇄당한 서울의 예수성심신학교와 대구의 성 유스티노 신학교 학생들의 전입(轉入)을 받아들여 일제 패망 직전에는 학생수가 100여 명에 이르는 바카라 룰의 유일한 대신학교 역할을 담당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다가 1949년 5월 북한 정권에 의해 덕원 수도원과 신학교가 몰수당하고 성직자, 수도자들이 체포당함으로써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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