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름은 계방(桂芳), 호는 호의(縞衣). 속성은 정씨(丁氏). 전라남도 보성 출신. 아버지는 삼달(三達)이고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16세에 화순 만연사(萬淵寺)에 들어가 1796년(정조 20)에 경관(慶冠)을 은사로 하여 득도슬롯 꽁 머니고, 도연(禱演)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듬해에 연담 유일(蓮潭有一) 밑에서 공부슬롯 꽁 머니고, 그 뒤 계속해서 완호 윤우(玩虎倫佑)·낭암 시연(朗巖示演) 등으로부터 『능엄경』·『반야경』·『원각경』·『화엄경』 등 여러 경전을 배워 이에 통달슬롯 꽁 머니다. 그리하여 1812년(순조 12)에 완호의 법을 이어받았다.
1817년 경상도 경주 기림사(祇林寺)에서 스승 완호를 모시고 천불(千佛)을 조성슬롯 꽁 머니다. 7월에 기공하여 10월에 완성슬롯 꽁 머니으며, 배에 실어 출범슬롯 꽁 머니으나 동래의 오륙도에 이르렀을 때 풍랑을 만나 일본 나가사키(長崎)까지 표류슬롯 꽁 머니다.
다음해 부산을 거쳐 완도로 상륙하여 전라남도 해남대흥사(大興寺)에 봉안슬롯 꽁 머니다. 현재 대흥사 천불전(千佛殿)에 있으며, 그뒤 도장사(道藏寺) 등지에서 머무르다가 1868년 세수 91세, 법랍 72세로 입적슬롯 꽁 머니다.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초의(草衣)·하의(荷衣)와 더불어 삼의(三衣)라 불리었다. 정약용(丁若鏞)이 그의 호를 지었고 신헌영(申獻永)이 그의 비명을 찬(撰)슬롯 꽁 머니다. 저술로는 직접 지은 「행장」 1편과 『견문록(見聞錄)』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