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1책. 필사본. 서(序)·발이 모두 없어 편자와 필사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은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를 비롯, 많은 한시문을 수록하였는데, 뒤편에 『김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서(金懈菴歌曲集序)』·『제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후(題懈菴歌曲集後)』·『제선생집후(題先生集後)』가 모필체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김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서』는 1690년(숙종 16) 5월 19일에 강진(康津)에 사는 오이건(吳以健)이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서』 바로 뒤에 김응정(金應鼎)을 흠모하는 오이건의 자작(自作) 시조 3수가 실려 있다.
『김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서』에서 오이건은, “선생이 지은 꽁 머니 카지노 3 만이 자못 잃은 것이 많아, 백분의 하나도 보존되는 것이 없으니 공의 5대손 이호(爾瑚)가 나머지를 수습해 가지고 나에게 교정하기를 부탁함에 내가 이미 그 청함을 중하게 여겼고, 또 선생을 추모해서 약간을 수집해 기록하고 친히 스스로 베껴서 『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懈菴歌曲集)』이라 이름하고, 아래에 두어 곡의 졸한 노래를 지어 경앙의 회포를 붙인다.”라고 썼다.
『제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후』는 1707년(숙종 33) 10월 하순에 강진에 사는 오희겸(吳喜謙)이란 이가 썼다. 『제해암꽁 머니 카지노 3 만집후』에서는 “또 꽁 머니 카지노 3 만을 지은 것이 매우 많으므로 지금 다시 덧붙여 말할 필요는 없다. 그 꽁 머니 카지노 3 만을 말하자면 높은 곡조로 화답할 사람이 적고 원대한 취미를 알 사람이 적으니 비록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 해도 바람에 날아가는 꽃이 눈에 기꺼운 것과 좋은 음악이 귀에 지나가는 데 불과하다.”고 써서 김응정이 높은 품격의 시조를 많이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는 이 없음을 매우 애석해 하였다.
『제선생집후』는 1709년(숙종 35) 3월 하순에 강진에 사는 최정익(崔井翊)이 썼다. 내용 가운데 “다만 그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아름답고도 높아서 성정에서 나왔으니 여러 사람은 다 숭상하거늘 자네의 의론이 여기에 미치지 않음은 어찌된 것인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그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완미하여 봄에 어버이를 사모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은 깊은 뜻이 있었고, 또 간혹 세상을 민망히 여기고 풍속을 오만하게 아는 뜻이 있으니 자연히 탄상하여 베풀지 않을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이것은 특히 일에 당하고 물건에 감동되어 그 회포를 붙여 쏟아놓은 것이니, 진실로 꽁 머니 카지노 3 만은 곧 그 나머지 일이라는 것을 알겠다.”라고 쓴 대목이 있다.
이로써 최정익이 해암의 꽁 머니 카지노 3 만과 함께 그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김응정의 시조 작가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진동혁가(秦東赫家)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