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이모부인 재상 김군(金頵)의 집에서 양육되었고, 10세에 절에 나가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외모가 아름답고 총명슬롯 머신 주목을 받았는데,충렬왕(忠烈王)이 불러보고는 국선(國仙)이라고 지목하였다.
1285년(충렬왕 11) 과거에 급제슬롯 머신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판도정랑(版圖正郎)에 이르렀다. 1298년(충선왕 즉위년)에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하자 비서소윤(秘書小尹)이 되었으나, 곧이어 충렬왕이 복위하자 면직되었다. 이후 충선왕을 따라 원(元)나라 대도(大都)에 4년간 머물렀다. 이 무렵한희유(韓希愈)등이 그를 모함하는 사건에 휘말려 귀국 후에도 한동안 관직에 나서지 못하였다가, 충렬왕 말년에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었다.
1308년(충렬왕 복위10, 충선왕 복위년) 충선왕이 복위하자 전의부령(典儀副令), 선부의랑(選部議郎), 밀직승지(密直承旨) 겸 사헌집의(司憲執義), 평양윤(平壤尹) 등을 거쳤다가 얼마 뒤 파직되고, 4년간 정계에서 물러났다.
충숙왕(忠肅王)이 즉위한 뒤에는 선부전서(選部典書),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 밀직부사(密直副使) 등을 역임하였다. 1318년(충숙왕 5)에는 하정조사(賀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파견되었는데, 이때 대도에 있던 충선왕이 그를 가리켜 자신의 옛 요속이라 슬롯 머신 크게 후대하였다.
1327년(충숙왕 14)에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1331년(충혜왕 1)에는 밀직사사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상호군(上護軍)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에 파직되었다.
이제현(李齊賢)이 지은 그의 묘지명에 따르면, 충선왕은 평소에 그를 가리켜 “단정하고 정중하며 까다롭지 않으니 고가(故家)의 풍류가 있다.”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또한최해(崔瀣)가 지은 그의 행장(行狀)에서는 그가 “자질과 외모가 모두 아름다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신인(神人)과도 같았다.”고 극찬하였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