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수는 오호(五胡)의 서역 부녀자들의 두식(頭飾)으로 중국 수나라·당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왔다고 한다. 당나라에서는 이를 멱리(羃䍦)·유모(帷帽)·개두(蓋頭)라고 하였고, 고려에서는 몽두(蒙頭) 또는 개두라 하여 부인들이 나들이할 때 검은 나(羅)로 만들어서 썼다.
그런데 고려는 일찍이 해상무역이 번성하여 서역의 사라센과도 교역이 있었고, 사라센인들은 고려에 와서 벼슬도 하고 장사도 하면서 서역의 많은 정품 슬롯사이트를 들여와 고려의 정품 슬롯사이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이 사라센 여인들이 내외를 하기 위하여 머리를 덮고 눈만 내놓던 풍습을 직접 받아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몽수는 세폭에 길이가 여덟자나 되는 것으로 이마에서부터 머리를 내려덮고 면목(面目)만을 나타내었으며, 그 나머지는 땅에 끌게 하였고, 그 값은 금 한근과 맞먹었다고 한다. 몽수는 너울의 기원이 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와 짧게 되었고, 원립(圓笠)이 들어와 이것이 다시 나화립(羅火笠)·넓은립[廣笠]·너울로 된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