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월 31일에 서정균이 창간하였다. 서정균은 1937년에 경상북도 달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1971년에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서정균이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았고, 주간은 소설가 신예선이 담당하였다. 1973년 6월 이후에는 주간을 없애고 고문과 편집위원회를 두어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1973년 1월 31일부터 1985년 6월 1일까지 약 12년 동안 251회 발행되었다. 1974년에는 매달 2차례에 걸쳐 8면으로 발행되다가 1983년∼1985년 6월 1일에는 매달 3차례 발행되었다.
이 신문은 민족의식의 고취, 정치에서 독립, 진정한 교포 대변자의 역할 등을 발행 목적으로 삼아 사실의 객관적 보도, 비판 정신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기사 내용은 일정하지 않았지만, 초기에는 주로 재미 무료 슬롯 사이트인의 활동상, 해외 한인 소식 등을 간략히 전하면서 재미 한인들이 투고한 시, 수필, 기행문 등을 실었다. 하지만 1973년 6월 이후에 조직을 개편하고는 유신 정권을 비판하거나 학생 운동을 자세히 보도하는 등 무료 슬롯 사이트의 민주화 운동을 자세히 알렸다. 이를 계기로 반독재민주화운동 단체로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을 주도하던 미주민주국민연합의 대변지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서정균이2005년 6월에 세상을 떠난 뒤에, 유족들은 이 신문과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하였다. 1970년대∼1980년대 재미 한인의 국내 정국에 대한 관심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