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정주시 정주읍 뒷산으로부터 시가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성으로, 북한에서는 국가지정에볼루션 바카라재 보존급 제170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본래 정주읍성의 자리에는 15세기 중엽에 쌓았던 둘레 9,700자의 토성이 있었으나, 1558년에 둘레가 너무 넓어 방비가 어렵다 하여 이를 줄여 축성하였다. 이후 1714~1715년 사이에 둘레 약 4.1㎞의 석성으로 개축되었고 1823년과 1855년에 수축되었다.
조선 초에 처음 쌓을 때는 흙으로 쌓았으나 뒤에 석성으로 개축한 정주의 읍성이다. 성의 동남쪽으로는 북쪽으로부터 달천이 흐르고, 북쪽 봉우리에는 북장대가 있다. 북쪽의 장대산(북장대)을 배경으로 하고 그 양쪽으로 흘러내린 능선들과 그 안의 벌을 품고 쌓은 평산성 형식의 석성이다. 성의 평면은 거의 타원형이나 북장대쪽으로 조금 삐져나왔다. 성벽은 자연석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았고 성 남쪽에는 겹성을 이루었다. 『증보문헌비고』와 『신안지』에 의하면 성에는 4개의 대문과 2개의 수구문, 1,206개의 성가퀴, 21개의 포루, 2개의 옹성, 4개의 연못, 8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벽 높이는 2~5m에 이르고 있으며, 성벽에는 치들이 남아 있으며 능선을 따라 성벽이 돌출된 지점들에 설치되어 있다. 북쪽 성벽에서만 해도 8개의 치가 확인되었다. 성문터는 북쪽의 장대산 중턱에서 1개가, 성 안팎이 연결되는 평지에서 나머지 3개가 확인되었다. 장대산마루에는 봉수터가 있으며 그 밑에는 ‘성첩중수비’가 서 있다. 그 외에도 성 안에는 여러 비석들이 있으며 옛 못자리 하나도 알려졌다. 현재의 성벽 높이는 2~5m에 이르고 있으며, 성곽의 요소에는 치성을 설치하고 있다.
정주읍성은 1811년(순조 11)에 발생한 홍경래의 난 때 성내의 서장대에서 홍경래가 난군을 지휘하며 4개월 여를 버티다 패배한 곳으로 유명한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