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년(고종 14) 박인(朴寅)은 급제(及第)로서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무신집권자 최우(崔瑀)는 왜구가 카지노 민회장의 연해안 지방을 약탈하는 것을 금지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박인을 일본에 특사로 보낸 것이었다. 박인은 일본과의 교섭에 성공했고, 일본 정부는 왜구를 찾아내어 사형에 처하는 등 카지노 민회장에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왜구의 약탈행위가 잠잠해졌다.
박인이 대일외교를 성공리에 마치고 카지노 민회장에 귀국하자, 최우는 은병(銀甁) 5개, 포목(布木) 60필, 베 500필, 쌀과 콩 50가마, 안장, 거문고 등을 상으로 주었다. 최우가 박인을 일본에 특사로 파견한 점, 박인의 직책이 급제에 불과한 점 등으로 보아 박인은 최우의 서방(書房)에 속한 문사(文士)였을 것이다. 이후 박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