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꽁 머니 카지노에는 급제자의 이름과 급제의 구분(乙科·丙科·同進士·恩賜·明經業 등)·연대·시관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1102년(숙종 7) 을과급제자에게 꽁 머니 카지노와 안마(鞍馬)를 주었다고 하는 것이 고려시대 최초의 예이고, 1205년(희종 1)에 급제한 장양수(張良守)의 꽁 머니 카지노가 있으며, 1305년(충렬왕 31)에 급제한 장계(張桂)의 꽁 머니 카지노가 196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4세기의 것으로는 1355년(공민왕 4) 동진사에 급제한 양이명(楊以明)의 꽁 머니 카지노와 1376년(우왕 2) 을과 제2인으로 급제한 양수생(楊首生)의 꽁 머니 카지노가 있으며, 1330년(충숙왕 17)에 급제한 이자수(李自脩)의 잡과꽁 머니 카지노가 있다. 이러한 것들은 고려시대 꽁 머니 카지노수여의 범위가 매우 넓었던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이에 비하여 조선시대는 꽁 머니 카지노의 수여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문과·무과의 전시(殿試) 급제자에게만 주었다. 그 양식은 홍색의 종이에 성명과 갑과·을과·병과의 구분 등을 기입하고, 연·월·일의 연 밑에 어보를 찍었다.
임진왜란 때는 공명꽁 머니 카지노(空名紅牌)를 각 진영에 보내 전공자의 성명을 기입하고 전공에 따라 등급을 정하였다. 이와같이 꽁 머니 카지노가 남발됨에 따라 꽁 머니 카지노매매나 위조꽁 머니 카지노의 폐단이 나타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