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일천(一天). 서울 출신. 양정고등보통학교(養正高等普通學校)를 거쳐 1922년 정칙학교(正則學校) 고등과를 수료하였다. 1922년 1월 고학생친목회(苦學生親睦會)에 참여하고, 1923년 3월 반도바카라회(半島少年會)를 조직해 무산바카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5년 5월 바카라운동연합단체의 결성을 주도해 사회주의 중심의 오월회(五月會)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이 단체는 그 뒤 경성바카라총연맹(京城少年總聯盟)으로 개칭했으나 일제의 불허로 다시 오월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927년 10월 조선바카라연합회(朝鮮少年聯合會)가 창립되자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조직부장을 맡았고, 1928년 3월 조선바카라총동맹(朝鮮少年總同盟)을 조직해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 해 전남바카라연맹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금고형에 처해졌고, 1929년에도 체포된 바 있다.
정홍교는 바카라운동을 전개하면서 동화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924년에 『바카라주보(少年週報)』, 1927년에 『바카라조선(少年朝鮮)』을 창간하였다. 또 1934년에는 『라디오세계』의 주간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정홍교는 방정환(方定煥) 등의 동심주의·민족주의 바카라운동과는 노선을 달리해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무산바카라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한국바카라지도자협회 회장·대한 3·1바카라단 중앙총본부 단장·한국아동문학회 최고위원·자유문학자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전국문화단체총연합 최고심의위원·한국아동복지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어린이의 인권옹호와 복리증진에 이바지하였다.
또 일간 『단민보(檀民報)』의 편집국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56년까지 『바카라시보(少年時報)』를 순간(旬刊)으로 발행하기도 하였다.
1966년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1971년에 대통령포상을 수상바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