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별신굿이나 도당굿 등 동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아울러 고구려신화 및 왕조전설과 결부되어 그 기층구조를 이루었던 제의이기도 하다. 그러한 뜻에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언급된 가야의 신맞이굿과 함께 무료 슬롯 사이트종교사에서 차지하는 몫이 매우 크다.
그러나 수신은 천신(天神)이 상자에 담겨 하강하였다고 하는 가야와 신라의 신들과는 달라서, 수혈(隧穴;동굴)이라는 성혈(聖穴) 안에 목각신상을 신체(神體)로 하여 모셔진 굴신(窟神)이다.
그리고 수신이 주몽(朱蒙), 즉 동명왕이라고까지 단언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그러나 수신과 신격화된 동명왕은 몇 가지 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① 수신이 굴혈신이 듯이 동명왕도 기린굴을 드나드는 신화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기린굴을 통하여 동명왕은 하늘과 땅 사이를 내왕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② 수신제가 시월에 벌어지는 국가적 규모의 큰 행사이었듯이 동맹(東盟) 역시 같은 시기에 같은 공동체 안에서 치러진 종교행사이었으므로 그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이 틀림없고, 아울러 동맹은 동명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 기록은 동맹을 아예 ‘동명’으로 적어놓았다.
③ 등고신(等高神)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동명왕의 신상(神像)이 목각이듯이 수신 역시 목각신상이었다. 이러한 유서한 점으로 말미암아 곧 동명왕과 수신을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신체상의 공통성으로 미루어보아 그 둘에 관한 종교행사도 성격이 서로 비슷하였으리라고 볼 수 있다.
즉 수신제도 동맹(동명)과 마찬가지로 공동체 내지는 국가의 수호신에게 바쳐진 공동제의이었을 것이며, 그 시기가 시월인 것으로 보아 수확을 기념하면서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해진 날에 일정한 절차를 거쳐 신맞이를 하여 제의를 치르고 다시 그 신을 원래의 자리로 송배(送拜;숭배하여 보내는)하는 제의를 벌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절차는 동제의 기본구조와 일치하며 뒷날 고려에까지 전해진 팔관회(八關會)의 원형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