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1년(의종 5)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으며, 1163년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서 서북면지병마사(西北面知兵馬事)로 나갔다가 병마사 이양실(李陽實)이 유사(有司)의 탄핵을 받자 그를 대신하여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1165년 우상시(右常侍)로서 국자감시(國子監試)의 시관(試官)이 되었고, 다음 해 예부상서(禮部尙書)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역임하였다. 뒤에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질박하고 정직하여 남에게 아첨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하여 근신(近臣) 이복기(李復基)의 미움을 받게 되어 1170년 상서좌복야 판비서성사(尙書左僕射判祕書省事)로 좌천되었다. 바로 이 해 무신란이 일어났는데, 그 뒤의 행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고려사』 정중부 열전에 1170년 9월 무신란 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서순(徐醇) 등이 죽임을주1고 되어 있는데 이 때의 서순(徐醇)이 서순(徐淳)과 동일인이라면 무신란때 죽은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