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처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자헌대부를 역임한 환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05년(연산군 11)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주요 관직
자헌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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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자헌대부를 역임한 환관.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세종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일곱 임금을 시종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종 때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단종 때 귀양이 풀리고 직첩이 되돌려졌으나, 1455년(단종 3) 정변에 관련되어 삭탈관직당하고 유배되어 본향의 관노가 되었다.

세조 때 다시 복직되어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록되었으나, 다시 세조로부터 시종이 근실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아 자주 장형(杖刑)을 당하였다. 성종으로부터는 전어(傳語: 통역)에 공이 있고, 의술을 알아 대비의 신병 치료에 이바지하였다고 바카라 룰 가자(加資)되고 상급을 받기도 하였으며 품계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그 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다시 시종에 임하였으나 직언을 잘바카라 룰 미움을 받던 중 1505년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의 비행을 직간하다가, 연산군에 의해 직접 다리와 혀가 잘리고 죽음을 당하였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양자인 이공신(李公信)과 7촌까지도 연좌시켜 처형하고 본관인 전의도 없앴다.

그리고, 조야(朝野)에 명바카라 룰 ‘處(처)’ 자(字)와 ‘善(선)’ 자(字)를 이름에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 뒤 1751년(영조 27) 고향에 정문이 세워졌다.

참고문헌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대동기문(大東奇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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