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연 ()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이칭
조원(祖源)
성대(星臺)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36년(헌종 2)
사망 연도
1899년(고종 36)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경상북도 봉화
관련 사건
민비시해사건|단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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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성대(星臺). 경상북도 봉화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참봉을 지냈으며, 안동 병진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였다. 1895년 민비시해사건과 단발령에 격분한 안동지역 의병들은 안동관찰부를 점령하고, 유지호(柳止浩)·김흥락(金興洛) 등 참모진은 권세연을 안동의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권세연은 격문을 발표하여, 각지의 의병부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민심을 크게 격려, 고무시켰다. 이 격문에는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자에 대한 증오심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어, 의병규합에 큰 몫을 하였다.

또한, 이것이 계기가 되어 1896년에는 예안의 이만도(李晩燾), 영양의 조승기(趙承基), 문경의 이강년(李康秊)·유시연(柳時淵)·김도화(金道和)·김도현(金道鉉) 등 각지의 의병장들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28일 안동으로부터 도망쳤던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이 많은 관군을 끌고 공격하여 의병들이 패배하였다. 권세연은 최후까지 싸워서 한 몸을 바치고자 하였으나, 참모들의 간곡한 권고에 못이겨 피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창토토 사이트 바카라문록(倡義見聞錄)』
『속음청사(續陰晴史)』
『종의록(從義錄)』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의병항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4)
『석주유고』(이상룡, 1973)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집필자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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